본문 바로가기

새소식

보도자료

김하종의 앞치마와 '지금-여기'에서의 길

페이지 정보

작성자 안나의집 작성일24-01-24 14:04

본문

명확하지 않은 발음에 목소리도 작았지만 메시지는 명징했다. 눈빛과 몸짓, 표정은 선명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. 이탈리아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해 30여 년 동안 매일 앞치마를 두른 채 500인 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성남 안나의집 대표 김하종 신부 얘기다.

최근 인문공동체 책고집 5주년 행사에서 김 신부의 강연을 들었다. 깊고 통찰력 있는 지식을 전하거나 매력적인 화법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강연은 아니었다. 단지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담담히 말했다. '30여 년 봉사활동'이란 말의 무게는 깊고 넓었다. "'지금, 바로, 여기'에서 시작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. 1시간 있으면 1시간 봉사하면 되고 1천원 있으면 1천원 기부하면 됩니다."

새해를 맞아 모두 길을 찾고 논한다. 새해 첫날 서점에선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베스트셀러, 자기계발서, 부동산 투자 및 재테크 서적, 자격증 시험 관련 교재와 학술서 등을 집는다. 이들 책엔 각자의 길이 고스란히 투영되는데 책 종류만큼이나 길도 다양하다.



총선이 있는 해인 만큼 정치권에서도 연일 새로운 길이 쏟아진다. 최근 취임한 여당의 비대위원장은 "세상 모든 길은 처음에는 다 길이 아니었다. 많은 사람이 같이 가면 길이 되는 것"이라며 새 출발을 알렸다. 제1야당에선 유력 정치인이 탈당을 시사하며 "국민께 새로운 선택지를 드려야 한다. 우리는 그 길을 갈 것"이라고 판을 흔들었고, 당 대표가 "당을 나가는 것만이 그 길은 아니다"라고 맞섰다.

'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,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'와 달리 우리 사회엔 수많은 길들이 놓여 있고, 전해진다. 이들 길 가운데 우리는 매번 한없이 헤매고 부유할 뿐이다. 김 신부처럼 머나먼 목적지가 아닌 '지금-여기'에 발 딛으면서 길을 모색한다면 우리의 새해 소망도, 한국 정치도, 언론도 현실에 밀접히 천착해 구체화되지 않을까.

/김동한 경제부 기자 dong@kyeongin.com